금천초·남성중 거쳐 공주사대부고·서울대 정치학과 졸업…행정고시 34회로 공직 입문
해운정책과장·인천해수청장·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거쳐 대통령비서실 해양수산비서관
공직 이후 한중훼리 대표이사…현재 법무법인(유) 세종 고문으로 활동
같은 대선리에서 자란 서장원 부여군의원과 친구…중앙행정과 지방행정에서 서로 다른 공직의 길
충남 부여군 남면의 작은 농촌마을 대선리에서 성장해 대한민국 해양수산 정책의 중심까지 걸어간 공직자가 있다.
지희진 법무법인(유) 세종 고문이다.

지 고문은 부여군 남면 대선리 출신으로 금천초등학교와 남성중학교를 거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으며 1990년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발을 들였다.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과장과 해운정책과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수석조사관,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등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해양수산비서관을 지냈다. 그의 이력을 따라가면 대한민국 해운·항만·해양안전 정책의 변화 과정과 상당 부분 겹친다.
공직을 떠난 뒤에도 바다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한중훼리 대표이사 사장과 인천항만공사 항만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법무법인(유) 세종 고문으로 전문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6년 3월 공시된 자료에서도 지 고문은 법무법인(유) 세종 고문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배처럼 생긴 바위’에서 이름 얻은 대선리…그의 출발점
지 고문의 고향인 부여군 남면 대선리(大船里)는 부여 남부권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부여군이 공개한 마을 유래에 따르면 대선리는 조선시대 말 홍산군 남면에 속했다. 마을에 배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배아구’, ‘바이아위’ 또는 ‘바야위’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대선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국가기록원의 1914년 지적 관련 기록에도 당시 ‘충청남도 홍산군 남면 대선리’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마을의 역사는 더 오래 전으로 올라간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공개한 부여지역 선사유적 자료에는 남면 대선리에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가 확인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대선2리 ‘북촌’ 마을 입구의 낮은 구릉 일대에서는 과거 경지정리 과정에서 석기와 백제시대 유물이 수습됐다는 주민 제보 내용도 조사 자료에 담겨 있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서도 읍내와 떨어진 농촌마을인 대선리. 지 고문의 공직 인생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금천초·남성중에서 서울대까지
지 고문은 고향 인근 금천초등학교와 남성중학교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공주사대부고에 진학했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가 공직에 들어선 것은 1990년이다.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중앙부처 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경력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다’다.
해양수산부 기획관리관실 법무담당관을 비롯해 해양정책과장, 해운정책팀장, 국토해양부 해운정책과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면서 해운과 해양정책의 실무를 경험했다.
법과 제도를 다루는 업무에서 출발해 해운산업과 해양정책으로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해운정책에서 해양안전까지…정책 현장 두루 거쳐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 고문의 경력은 대한민국 해운정책의 핵심 부서로 이어졌다.
2006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과장, 2007년 해운정책팀장, 2008년 국토해양부 해운정책과장 등을 거쳤다.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부처 명칭과 조직은 달라졌지만 해운·해양 분야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2010년에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수석조사관을 맡았다. 해양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 방지와 해양안전 정책에 연결하는 분야다.
2011년에는 2012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서비스운영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미국 해양대기청(NOAA) 근무 경력도 쌓았다.
해양정책과 해운산업뿐 아니라 국제행사와 해외기관 경험까지 업무 영역을 넓힌 시기였다.
인천항에서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으로
지 고문은 2014년 제55대 인천지방해양항만청장에 취임했고, 정부 조직 개편 이후인 2015년에는 제55대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으로 업무를 이어갔다.
인천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무역항이자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해상물류의 주요 관문이다. 중앙부처에서 정책을 설계했던 그가 일선 지방청을 맡으면서 항만과 해운정책의 집행 현장까지 경험한 셈이다.
이어 2015년 6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에 올랐다.
2026년 한국거래소 공시 자료에서도 지 고문의 주요 경력으로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과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이 공식 기재돼 있다.
청와대로 간 부여 출신 해양관료
지 고문의 공직 경력에서 정점으로 꼽을 수 있는 자리는 대통령비서실 해양수산비서관이다.
그는 2015년 12월부터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해양수산비서관으로 근무했다.
해양수산비서관은 정부의 해운·항만·수산·해양 정책을 대통령실 차원에서 조율하고 관계 부처와 정책 방향을 협의하는 자리다. 오랫동안 해양수산 분야에서 쌓은 현장과 정책 경험이 청와대 정책조정 업무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2026년 공개한 공시에도 그의 주요 경력 가운데 ‘대통령 비서실 해양수산비서관실 비서관’이 명시돼 있다.
부여 남면 대선리의 농촌마을에서 시작된 그의 길이 대한민국 해양수산 정책을 조율하는 대통령비서실까지 이어진 것이다.
공직 떠나서도 ‘바다’…한중훼리 대표이사로
공직 이후에도 지 고문의 전문 분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9년부터 한중훼리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며 공직에서 축적한 해운·항만 경험을 민간 해운산업 현장으로 옮겼다. 2022년 12월부터는 인천항만공사 항만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중앙정부의 정책 담당자와 항만 현장 책임자를 모두 경험한 뒤 민간 해운기업 경영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는 점이 그의 경력에서 눈에 띈다.
같은 대선리에서 자란 친구 서장원…한 사람은 중앙으로, 한 사람은 고향으로
지 고문의 고향 이야기를 따라가면 또 한 명의 부여 인물과 특별한 인연이 나온다.
현재 부여군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장원 의원이다.
지희진 고문과 서장원 의원은 부여군 남면 대선리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 사이다. 어린 시절 한 마을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훗날 각기 다른 공직의 길을 걸었다.
지 고문이 행정고시에 합격해 중앙정부로 진출했다면 서 의원은 부여군청에서 오랫동안 지방행정 경험을 쌓았다.
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가선거구 의원으로, 부여군청 자치행정과장과 농업정책과장을 지냈다.
두 친구가 걸어온 길은 닮은 듯 다르다.
지 고문이 서울과 세종, 인천 등 중앙정부와 해양·항만 현장을 오가며 국가 정책을 다뤘다면, 서 의원은 고향 부여에서 주민과 맞닿은 행정을 담당했다. 그리고 공직을 마친 뒤에는 군의회에 입성해 지방의정의 길을 걷고 있다.
한 사람은 중앙행정으로, 다른 한 사람은 지방행정과 의정으로 향했다.
출발점은 같은 대선리였다.
농촌마을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중앙과 지역의 공직 현장으로
지희진 고문의 이력을 단순히 ‘고위공직자의 성공담’으로만 보는 것은 그의 공직 경력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1990년 행정고시 합격 이후 해양정책과 해운, 해양안전, 국제행사, 항만행정,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민간 해운기업과 법률서비스 영역까지 이어진 그의 경력에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축적해 온 관료의 궤적이 담겨 있다.
동시에 그의 출발점이 부여 남면 대선리였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같은 마을에서 자란 친구인 서장원 의원이 부여군 지방행정과 의정의 길을 걸었다는 점까지 놓고 보면 대선리에서 출발한 두 사람의 인생은 중앙과 지방이라는 서로 다른 공직 현장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된다.
농촌지역은 인구 감소와 학교 통폐합, 청년 유출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역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중앙정부와 지방행정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쌓아온 과정은 지역 인재 육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되짚어볼 만하다.
대선리에서 시작된 길, 다시 지역의 자산으로
지희진 고문에게 대선리는 이력서 한쪽에 적히는 출생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린 시절 고향 학교에서 공부한 소년은 서울대와 행정고시를 거쳐 해양수산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가 됐고, 인천항 현장과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을 지나 대통령비서실까지 갔다. 공직 이후에는 민간 해운기업 경영과 항만 분야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고향 대선리에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서장원 의원이 지방행정 경험을 토대로 군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여 남면 대선리에서 함께 성장한 두 친구.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바다를 다루는 중앙행정으로 향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고향 주민들의 삶을 다루는 지방행정과 의정의 길을 택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서로 달랐지만 출발점은 같다.
‘부여군 남면 대선리’
작은 농촌마을에서 시작된 지희진 고문의 30여 년 공직과 해양 분야 여정은 지역 출신 인재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가 정책의 현장까지 진출한 하나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