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훈장 소진만 선생의 발자취 따라 주민들이 가꾸는 ‘마을 기록 저장소’로 거듭나야
우연히 부여출신 소종섭 기자의 2013년 기사인<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에서 “정동리에는 ‘이안재(易安齋)’라는 부여의 마지막 서당이 있던 곳이다”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10여 년 지난 지금도 남아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부여군 정동리를 위성지도와 로드뷰를 따라 한참을 헤맨 끝에 좁은 골목길 안쪽에서 나지막한 한옥 한 채를 만났다. ‘부여의 마지막 서당’으로 불리는 ‘이안재(易安齋)’다.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도리어 편안한 곳”이라는 그 이름처럼, 이곳은 70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정동리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었다.
진주 소씨 가문의 가업, 지역 배움터의 산실

이안재의 역사는 진주 소씨 가문의 가업과 궤를 같이한다. 마지막 훈장이었던 소진만 선생(1985년 별세)은 부여향교 전교를 역임한 지역의 이름난 학자였다. 선친 때부터 대를 이어 서당을 운영해온 그는 어려운 형편에 정규 학교를 가지 못한 지역 청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1970년대 학생 감소로 문을 닫기 전까지 이곳은 마을의 유일한 배움터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백범 친필까지 간직했던 숨은 문화 자산

현재 이곳에는 소 선생의 막내아들 소생영 씨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과거 서당방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서적들은 하나 둘 소실되고 겨우 남은 서적들과 현판이 안채에 보관되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글씨까지 소장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었으나, 세월의 흐름 속에 형제들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유물들의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인절미가 수업료였던 시절”… 마을의 살아있는 기억

마을 주민 소대영 씨는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겨울이면 서너 달씩 서당에 모여 글을 배웠다”며, “수업료 대신 인절미를 해다 드리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떼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소중한 기억과 유산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안재를 현대적 공간으로 재창조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보존을 넘어 ‘마을 기록 저장소’로 – 주민이 주인 되는 공간

전문가들은 이안재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마을 기록 저장소’이자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독서 토론회나 전통 예절 캠프,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사를 채록해 전시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안이다. 이는 세종시 조치원 신흥1리의 ‘외딴말 박물관’ 사례와 맥을 같이 한다. 신흥1리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마을의 옛 토기와 생활용품을 전시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한 바 있다.
서당의 정신을 잇는 현대판 사랑방으로
부여에는 여전히 곡부서당 등 그 명맥을 잇는 곳들이 남아 있다. 이안재 역시 완벽한 고증에 매몰되기보다는 서당이 가졌던 ‘나눔과 배움’의 정신을 계승하는 ‘현대판 사랑방’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스토리스팟 기자의 생각]
이안재의 보존 문제는 단순히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소멸해가는 농촌 공동체의 역사적 뿌리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세종 조치원의 사례처럼 주민 주도형 ‘마을 박물관’ 모델을 도입한다면, 이안재는 지역의 골칫거리가 아닌 새로운 로컬 콘텐츠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부여군은 이를 민간의 영역으로만 두지 말고, 유물 기록화 사업과 연계한 행정적 지원 방안을 시급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