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성복 전 부여군 산림녹지과장은 기고문에서 올해 밤값 하락으로 커진 재배 농가의 어려움을 짚고, 유통 투명성 강화와 가격안정기금 가동, 시장 격리 등 8가지 대안을 제안했다. 밤 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한 글을 싣는다.

가을 산자락이 풍성하게 물들고 알알이 영근 밤송이가 입을 벌리는 순간, 톡^톡^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대 밤 생산의 중심지인 부여의 산비탈에는 수확의 기쁨 대신 농부들의 짙은 한숨만이 무겁게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밤 생산량은 약 3만 7천여 톤(생산액 1천억원), 수입산(주로 중국밤)은 약 1만 5천 톤이며, 수출 3천 5백여 톤을 포함해 국내 총 밤소비량은 약 5만여 톤에 달합니다.
특히 우리 부여군은 2,395농가가 5,981ha의 재배면적에서 약 8천4백 톤의(생산액 242억원) 밤을 생산하며 묵묵히 땀방울을 흘려왔습니다.
그러나 올해, 굽은 허리를 두드려가며 주워 담은 결실 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도 가혹합니다.
2025년 대비 2026년 부여군의 밤값 하락 폭은 참담한 수준입니다. 일반밤 ‘특’ 등급은 초반 4,000원에서 3,100원으로 떨어지더니, 9월 29일 자로 2,900원까지 주저앉았습니다(전년 대비 27.5% 하락). ‘대’ 등급은 2,200원(29% 하락), ‘중’ 등급은 1,600원(30.4% 하락), 심지어 ‘소’ 등급은 1,200원에서 800원으로 무려 33.3%나 폭락했습니다.
특수밤인 대보와 병고 품종 역시 등급에 따라 16%에서 최대 36%까지 엄청난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마치 20여 년 전으로 회귀한 듯한 이 기막힌 가격표는 임업인들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고 있습니다.
전년도 재고 적체에 더해, 도매상과 수매 주체들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불투명한 유통 구조 속에서 농가들의 불신과 분노는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이에, 벼랑 끝에 내몰린 농가를 살리고 우리 밤 산업의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다음의 8가지 대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해 봅니다.
1.유통 투명성 확보 및 ‘수매가격 결정위원회‘ 상설화
대형 유통상과 조합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생산자 대표가 직접 참여하여 실제 도매가격, 재고량, 수입산 유통, 마진 등의 객관적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수매가격 결정위원회’를 상설화해 불신을 거둬내야 합니다.
2.불공정 유통행위 근절을 위한 강력한 조사
밤값이 20년 전으로 급락한 배경에 도매상이나 유통 거점의 사재기, 혹은 부당한 가격 인하 횡포가 있었는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 조사를 건의하여 무너진 유통 질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3.’가격안정기금‘을 통한 즉각적인 피해 보상 절차 이행
농산물 급락에 대비해 제정된 「부여군 농·축·임산물 가격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를 즉각 가동해야 합니다. 현재 폭락 사태가 조례상 지원 기준(당해연도 도매시장가격이 매년 고시된 최저가격의 80% 이하일 경우)에 충족하는지 검증하고, 충족되면 즉각 심의위원회를 소집해 차액 보전에 돌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4.정부 개입을 통한 ‘시장 격리‘ 조치로 추가 폭락 방지
유통업계에 떠도는 약 4만 가마(1,600여 톤)의 누적 재고와 소비 둔화가 사실이라면, 과잉물량을 정부(산림청), 지자체, 자조금위원회가 나서서 거두어들이거나(수거 및 산지폐기), 해외수출 손실을 메워주는 방식으로 ‘시장 격리’ 조치를 단행해야 합니다. 공급 과잉의 구조를 끊어내지 않으면 농가의 숨통을 틔울 수 없습니다.
5.기후위기 대비 및 경쟁력 있는 밤 품종 육성
우리나라 밤 생산액이 약1천억 원인데 비해, 중국산 천진율(군밤용) 시장만 7백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기후위기에 강하고 맛이 좋으며 껍질이 잘 벗겨지는 신품종 육성에 정부(산림청)가 적극적으로 나설수 있도록 촉구하여야 합니다.
6.저등급 밤 전량 수매 및 사료화 등 별도 처리 트랙 마련
깐밤 단가를 낮추기 위해 충과(벌레 먹은 밤)나 열과, 뜬밤 등이 헐값(kg당 200~500원)에 매취 유통되면서 전체 밤의 질이 저하되고 매년 생산량의 약10%(약 3,700톤)가 악성 재고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저등급 밤을 전량 폐기 또는 정부나 자조금위원회가 별도 수매하여 “밤 부산물을 이용한 사료 공장”을 설립하여 전량 폐기 처리하는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7.현실과 수요에 맞는 규격별 수매 단가 재조정
수출 및 유통업자들은 주로 저가의 “중” 등급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특” 위주의 대과 생산 시 저장성 저하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획일적인 매취 규격 가격을 재조정하여 ‘특, 대’ 중심에서 벗어나 ‘대’를 기준으로 삼고 ‘중, 소’ 등급의 단가를 상향하는 등 현실화가 필요합니다.
8.농가의 든든한 방패가 되는 조합 본연의 역할 회복과 정부와 지자체, 조합이 연합하여 수급 안정대책을 마련해야 됩니다.
밤 재배 농가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조합이 유통업자들의 눈치만 보거나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와 지자체, 조합이 연합하여 고통 받는 농가의 편에 서서 가격 방어에 적극 임해야 하며, 긴급 경영안정자금 융자 지원과 판로 개척 그리고 소비촉진에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화롯가에서 구워 먹고 따뜻하게 쪄서 입에 넣는 달콤한 밤 한 알에는 누군가의 고단하고 치열했던 1년의 시간이 뭉클하게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