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한국중부발전 상임감사위원
머무는 것도 없고, 고정된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며 흘러간다.
올해 전국 대학 교수들이 꼽은 사자성어 변동불거(變動不居)는 지금 우리의 지역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세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는 방향을 가늠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정치는 사사건건 충돌하고, 세계 경제는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며,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 지역 역시 흔들리고 있다.
애기 울음 소리가 그친지 오래고, 학생 수는 줄고, 학교는 통폐합 되고, 청년은 떠나고, 농촌은 고령화의 그림자에 잠식되고 있다. 지역의 지반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듯한 변화다. 그러나 변동불거가 말하는 것은 단지 빠른 변화가 아니다.
“어떤 변화든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보다 더 난감한 것은 ‘이 변화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들의 고민 앞에서 고전은 말한다.
교수들이 두 번째로 선택한 사자성어 천명미상(天命靡常)이다. 하늘의 뜻은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 역시 지역의 현실과 닮아 있다. 과거 잘 나가던 도시가 쇠퇴하기도 하고, 인구도 적은 작은 농촌이 새로운 희망을 피워 올리기도 한다.
지역의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준비된 의지와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즉, 우리 지역의 내일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지역 스스로 청년의 삶을 설계해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며, 문화·관광·농생명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천명미상(天命靡常)은 불확실성을 말하지만, 동시에 기회의 가능성도 내포한다. 준비된 지역만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이 변화의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세 번째 사자성어 추지약무(趨之若鶩)가 말하는 ‘쏠림의 현상’이다.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군중의 선동과 눈 앞의 이익에 휘둘리고 있다. 레밍(lemming,나그네쥐)이 앞선 한 마리를 따라가다 이유도 모른 채 절벽 끝까지 달려가듯, 지역도 때로는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방식으로 본질 없는 정책을 따라가는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러나 지역소멸 위기 앞에서 모방과 추종은 위험하다.
각 지역이 가진 역사·문화·자원·인구·산업의 고유한 차이를 무시한 채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레밍의 행렬속에 끼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지방이 맞닥뜨린 위기는 단순한 지방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 자체에 대한 물음이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이 멈추고, 청년이 떠나면 미래가 사라지며, 농촌이 없어지면 국가의 뿌리가 송두리채 흔들린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변화가 거세다고 해서 변화에 떠밀릴 필요는 없다. 천명(天命)이 일정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의 길까지 흔들릴 이유는 없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들 때 우리는 변화의 물결을 건너갈 수 있다.
지역을 지키는 일, 다음 세대의 희망을 준비하는 일, 공공성·품격·책임을 중심에 두는 일, 이것은 유행도, 목소리의 크기도, 남의 시선도 결정하지 못한다. 이것은 ‘원칙’이 결정한다.
그리고 원칙을 붙든 사람만이, 결국 흔들리는 시대를 버텨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큰 외침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는 묵직한 책임의식, 더 많은 약속이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이는 실행의 힘, 이미 난 길을 따라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미래를 설계하는 리더십이다.
변동불거(變動不居)의 시대일수록 지역 리더는 흔들림 없는 가치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천명미상(天命靡常)의 시대일수록 지역은 스스로의 손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추지약무(趨之若鶩)의 시대일수록 지역은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지방이 지금 다시 묻고 선택해야 하는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이 지역을 어디로 끌고 갈것인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모두가 지혜를 모아 답하는 순간, 지역소멸의 그림자는 걷히고 지역의 새로운 백년사는 다시 쓰이기 시작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