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각과 오래된 은행나무가 들려주는 세종의 진짜 역사
세종은 늘 새로운 도시로 소개된다. 정부청사가 들어서고, 아파트가 솟아오르고, 넓은 도로가 도시를 가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는 수식어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 화려한 신도시의 풍경 한가운데에는 누구보다 오래된 시간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름동 아파트 바로 옆 숲에는 ‘어서각’이 있다. 그 곁에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굵은 은행나무도 서 있다. 매일 산책하며 마주치는 풍경이지만, 발걸음을 조금만 늦추면 그곳은 신도시가 아니라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입구가 된다.

어서각은 영조 20년인 1744년에 세워졌다. 태조 이성계가 강순룡에게 내린 교지를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전각이다. 영조는 후손들이 교지를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어서각(御書閣)’이라는 이름을 써 내려 보냈다. 이후 정조와 고종의 어필까지 더해지면서 이 작은 전각은 한 가문의 이야기를 넘어 왕조의 기억을 품은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말, 목이 마른 이성계에게 강순용의 여동생이 물 한 바가지를 건넸다고 한다. 하지만 물 위에는 버들잎이 띄워져 있었다. 급하게 들이켜다 탈이 나지 않도록 천천히 마시라는 배려였다.

조선을 세운 뒤에도 이성계는 그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았고, 그녀를 성후 현비에 책봉하고 강씨 집안에도 교지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는 왕건과 장화왕후의 설화를 배낀 듯 한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과 함께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마음이 오롯이 남아 있다.

어서각 앞 은행나무는 또 다른 역사의 증인이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계절마다 다른 빛을 보여준다. 봄에는 연둣빛 새잎을 틔우고, 여름에는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 나무는 정부청사가 생기기 전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도 이곳을 지켜본 살아 있는 시간이다.
세종시는 계획도시다. 그래서 종종 ‘역사가 없는 도시’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절반만 맞다. 행정수도는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이 땅의 역사는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어서각과 은행나무는 그 사실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이 문화유산이 거대한 관광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며 그 앞을 지나고, 주민들은 반려견과 산책을 하며 나무 아래를 걷는다. 특별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역사는 우리의 삶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건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된 기억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한 도시의 품격이 만들어진다. 세종이 행정수도로 성장하는 지금, 어서각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주, 우리 곁에 있는 역사를 돌아보고 있는가.
오늘도 나는 산책길에서 어서각 앞을 지난다. 수백 년 전 왕의 글씨를 품은 작은 전각과 묵묵히 계절을 견디는 은행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때로 긴 설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일수록 오래된 시간이 더욱 소중한 이유도 바로 그곳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