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상징 낙화암(落花岩)을 치유와 환희의 야간 관광 명소로… ‘체류형 관광’의 승부수 던져야
‘공주알밤’의 그늘에 가려진 전국 1위 생산지, 부여의 냉혹한 현실
충남 공주에서 ‘제9회 겨울공주 군밤축제’가 한창이다. 2026년 2월 4일 개막한 현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추가 주차장이 만차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필자는 수차례 공주군밤축제를 방문했지만, ‘공주알밤’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파급력은 매번 경이로울 정도다.

하지만 이 풍경을 바라보는 인근 부여군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사실 밤 생산량의 정점은 공주가 아닌 부여에 있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부여군은 8,300여 톤의 밤을 생산하며 전국 생산량의 22.6%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 지역이다.
재배 면적 또한 5,981ha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지도는 ‘공주알밤’에 밀려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이제 부여는 ‘전국 1위 생산지’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밤(夜)을 활용한 밤(栗)의 재발견’, 체류형 콘텐츠로의 전환

그 해답은 ‘밤(夜)을 활용한 밤(栗)의 재발견’에 있다. 부여의 밤(夜)이 밤(栗)으로 더 깊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밤을 파는 시장을 넘어, 관광객이 부여의 밤하늘 아래 머물게 하는 ‘체류형 콘텐츠’가 절실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겨울철 주말에는 정림사지나 궁남지 인근에서 대형 화로에 밤을 구워 먹는 체험을 상설화 하거나 ‘부여 영화제’를 통해 밤을 먹으며 독립영화를 감상하는 ‘낭만의 밤’을 선사할 수도 있다. ‘백제 밤길 걷기’ 행사 도중 ‘뜨레밤 쿠폰’을 찾는 보물찾기 이벤트 등은 관광객의 발길을 부여에 묶어둘 훌륭한 유인책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밤(夜)까지 기다릴 필요를 만들어 보자
비극의 낙화(落花)를 환희의 낙화(落火)로, 역발상의 미학
부여만이 가진 ‘낙화(落花)’의 서사를 ‘낙화(落火)’의 축제로 치환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부여에는 삼천궁녀의 비극이 서린 낙화암(落花岩)이 있다. 이 비극의 상징을 뜨거운 불꽃이 떨어지는 ‘낙화(落火)놀이’로 승화시켜야 한다.

낙화놀이는 정월 열나흗날 밤 액운을 쫓기 위해 행하던 전통 불꽃놀이다. 떨어지는 불꽃을 꽃에 비유한 이 놀이는 시각적으로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재앙을 쫓고 경사를 부르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부여의 낙화암에서 이 불꽃을 피워 올리는 것은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선다. 절벽에서 꽃처럼 떨어진 이들의 넋을 밤하늘의 불꽃으로 재현하여 그들의 충절을 기리는 정화 의식이기 때문이다. 비극의 장소를 축복과 치유의 공간으로 리브랜딩하는 작업이다.

다행히 부여에는 ‘하냥살이낙화놀이체험관’ 등 전통을 전승하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안동 하회선유줄불놀이 함안낙화놀이와는 차별화된, 부여만의 독보적인 야간 관광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
경제 활성화의 열쇠, ‘야간 관광’과 ‘숙박’의 선순환
결국 핵심은 ‘숙박’이다. 밤(夜)에 펼쳐지는 낙화(落火)의 장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부여에 머물게 해야 한다.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주변 상권이 살아나고 지역 경제에 온기가 도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공주알밤’의 그늘에 가려졌던 ‘부여 뜨레밤’이 전국 1위의 위엄을 되찾는 길은 멀지 않다. 비극의 낙화(落花)를 환희의 낙화(落火)로 바꾸고, 그 불꽃 아래에서 부여의 밤(栗)이 익어갈 때 부여 관광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스토리스팟 기자의 생각]
관람객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런 전략은 ‘상징의 전복(Subversion of Symbols)’이라는 측면에서 고려해 볼만 하다. 그동안 부여 관광의 사슬이었던 ‘낙화암=비극’이라는 프레임을 ‘낙화놀이=치유’로 전환하는 시도는 행정적으로도 매우 고무적일 것이다.
특히 인근 지자체인 공주와의 차별화 전략이다. 공주가 ‘먹거리와 체험’ 중심의 주간 축제에 강점이 있다면, 부여는 역사의 서사와 불꽃의 미학을 결합한 ‘야간 감성 축제’로 승부수를 던져 본다. 이는 당일치기 관광객을 숙박객으로 전환하려는 고도의 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으며 향후 부여군이 이 콘텐츠를 얼마나 규격화하고 상설화하느냐가 ‘뜨레밤’ 브랜드의 글로컬(Glocal)화 여부를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