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 봉정리·논산 우곤리 잇는 실존 흔적 확인… ‘K-판타지’ 성지화 제언
족보와 보물, 고목이 증명하는 역사성… 체험형 ‘도술 콘텐츠’로 지역 소멸 위기 넘는다
고전 소설 속에서 구름을 타고 도술을 부리던 전우치(田禹治). 조선시대에는 《전우치전(田禹治傳)》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영화 《전우치》(2009), KBS 2TV《전우치》(2012~2013), 서울예술단과 지역 극단의 마당극《전우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 가공의 영웅이 실제로는 충남 부여와 논산의 산천을 누볐던 실존 인물이라는 역사적 근거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단순한 설화적 상상력을 넘어, 특정 가문의 족보와 국가 지정 보물, 그리고 수백 년을 버텨온 고목(古木)이 그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전우치는 박제된 고전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부여와 논산의 역사성을 잇는 핵심적인 ‘K-콘텐츠’이자 ‘K-무술’의 대표 IP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족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헌과 현장이 증명하는 실존 인물 전우치
전우치의 흔적을 따라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다. 이곳은 남양 전씨(南陽 田氏)의 집성촌으로, 전우치의 조상들이 잠든 땅이다. 봉정리에는 남양 전씨의 영광을 상징하는 전득우(田得雨) 장군의 묘와 그의 아들이자 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전흥(田興)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편에 솟은 파진산(破陣山)은 예로부터 기운이 범상치 않기로 유명하다. 향토 사료에 따르면, 전우치는 바로 이 파진산의 험준한 지형을 은신처 삼아 도술과 무예를 연마했다고 전해진다. 파진산의 기암괴석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수백 년 전 전우치가 수련하며 내뱉었을 기합 소리를 머금고 있는 듯하다.
더욱 구체적인 증거는 인근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서 발견된다. 현재는 논산에 속해 있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이곳은 부여 석성면에 속한 한 마을이었다. 우곤리는 자타공인 ‘전우치 고향 마을’로 불린다.

이곳에는 보물 제727호로 지정된 ‘남양전씨 종중문서 일괄’이 보관되어 있어 그 역사적 무게감을 더한다.

현장에서 만난 전윤호 남양전씨 종중회장은 족보 한 면을 펼쳐 보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전우치는 우리 문중의 실존 인물입니다. 우곤리는 남양 전씨의 ‘큰마을’이고, 봉정리는 ‘작은마을’입니다. 마을이 번성하면서 조상들의 묘역을 가까운 봉정리에 모셨던 것이죠. 전우치의 부친인 전지(田漬)의 묘소 역시 부여 석성면 비당리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우치가 이 지역의 토착 가문에서 태어나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는 전우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전우치가 길을 지나다 꽂아놓은 지팡이가 싹을 틔워 자라났다는 전설을 간직한 은행나무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푸른 잎을 틔워온 이 나무는 전우치의 비범함을 상징하는 생명력 있는 증거로 지역 주민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보는 공연에서 참여하는 도술로”… 부여에서 펼쳐질 현대적 ‘도술 축제’
전우치가 실존 인물이라는 역사적 토대는 이제 현대적 콘텐츠로 승화되어야 한다. 전우치의 상징인 ‘도술’은 현대의 ‘마술’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본 기자는 부여를 중심으로 전우치의 도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국 아마추어 마술대회’와 ‘도술 테마 관광’을 제안하고자 한다.


단순히 앉아서 구경하는 축제는 생명력이 짧다. 관광객이 직접 전우치의 제자가 되어 도술의 비법을 전수받는 ‘서사형 관광’이 필요하다.
[야간형: 실감형 미디어 파사드와 관객 반응형 공연]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그룹 ‘팀랩(teamLab)’의 시도처럼, 관객과 영상이 하나가 되는 공연을 기획할 수 있다. 성흥산성이나 파진산의 암벽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 공연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시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연출: 실제 배우들이 성벽 위에서 화려한 무예를 선보이고, 영상 속 요괴들이 실시간으로 배우들과 합을 맞춘다.
▷ 상호작용: 관객들은 스마트 밴드를 착용한다. 전우치가 “주문을 외우라”고 외칠 때 관객들이 특정 동작을 취하면, 밴드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영상 속 봉인이 해제되는 장관을 연출한다. 연막과 조명, 실감 나는 음향 효과가 더해지면 관객은 소설 속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주간형: 유머와 액션이 결합된 전우치 마당극]
낮 시간대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리 공연이 중심이 된다. 전우치의 기행과 탐관오리를 징벌하는 통쾌한 서사를 현대적인 감각의 마당극으로 풀어낸다. 관객이 극중 인물로 불려 나가 전우치와 함께 도술 대결을 펼치는 등 참여 요소를 극대화하여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
[체험형: 도술 학교와 인증 시스템]
“전우치의 제자가 되는 여행”이라는 컨셉에 맞춰, 파진산 인근에 ‘도술 수련원’을 상설 운영한다.
▷ 기공 및 무술 체험: 전우치가 연마했을 법한 전통 무예와 호흡법을 배운다.
▷ 도술 입문: 간단한 마술 원리를 배우며 ‘현대판 도술’을 익힌다.
▷ 도술 인증서 발급: 모든 과정을 마친 이들에게는 ‘전우치 도술 전수 인증서’를 수여하여 방문객들에게 명예로운 기념품과 재방문 동기를 제공한다.
[경연형: 전국 아마추어 및 프로 마술대회]
전우치의 후예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부여 전우치 마술 페스티벌’을 정례화한다. 전국 아마추어 마술사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무대를 마련하고, 이를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브랜드로 정착시킨다. 이는 전통적 도술 서사가 현대적 마술 산업과 결합하여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부여와 논산을 잇는 ‘범 전우치 테마 벨트’ 전략
전우치 콘텐츠는 부여와 논산이 협력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과거 고려 석성현이라는 하나의 뿌리를 가졌던 두 지자체가 행정구역의 경계를 허물고 ‘범 전우치 테마 로드’를 구축해야 한다.
- 전우치 순례길 (The Taoist Trail): 논산 우곤리(생가/고향) → 성동면 개척리(은행나무) → 부여 봉정리(조상 묘/파진산 수련지)를 잇는 역사 탐방로를 조성한다.
- 광역 IP 마케팅: ‘K-판타지의 발원지’라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하여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호소한다.
- 디지털 도술 지도: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하여, 각 거점마다 전우치가 숨겨놓은 ‘부적’을 수집하는 모바일 게임을 런칭한다. 모든 부적을 모으면 지역 식당이나 숙박업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주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
[스토리스팟 기자의 생각]
1. 역사적 고증과 판타지의 영리한 결합
전우치 콘텐츠의 강력한 힘은 서구의 수퍼히어로와 차별되는 ‘실존’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된 남양 전씨 문중의 증언과 보물 제727호의 존재는 전우치라는 IP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통성’을 부여한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되며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공간에서 역사적 근거를 눈으로 확인하며 판타지적 체험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2. 기술과 전통의 결합을 통한 ‘K-히어로’의 실체화
단순한 마술 공연을 넘어 미디어 파사드, 인터랙티브 조명, 관객 반응형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연출은 ‘도술’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완벽히 구현할 수 있다. 이는 전통 무술을 현대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모시키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3. ‘체험’을 넘어선 ‘자격’ 부여의 마케팅 효과
단순한 일회성 관람은 기억에서 쉽게 잊힌다. 하지만 ‘도술 인증서’와 같은 자격 부여 시스템은 관광객에게 특별한 정체성을 심어준다. 이는 SNS를 통한 자발적 확산을 유도하며, 전우치라는 IP(지식재산권)를 팬덤 기반의 문화 콘텐츠로 진화시키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4. 지자체 상생의 모델
과거 하나였던 부여 봉정리와 논산 우곤리를 잇는 전우치 벨트는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이 아닌 ‘공동 번영’의 모델을 제시한다. 부여의 수련 테마와 논산의 고향 테마를 연결함으로써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충남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