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국가는 이미 내부에서 조용히 붕괴를 시작한다. 베네수엘라는 그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때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가장 잘나가던 “가능성의 나라”였다. 세계 최고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했고, 경제 성장과 사회적 낙관이 공존하던 국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빈곤과 혼란의 상징이 되었다. 문제는 자원이 고갈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이성이 먼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처음부터 폭력의 얼굴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위로의 언어로 다가오고, 분노를 대신 말해주는 대변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어루만지는 말이기에 더 위험하다. 포퓰리즘은 국민을 노골적으로 속이기보다,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정치의 연료로 삼는다.
“국민을 위한다”, “기득권을 응징한다”, “지금 당장의 고통을 없애겠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다. 포퓰리즘은 미래의 비용을 현재의 박수로 감춰둔다. 책임은 뒤로 미루고, 원칙은 무시하며, 제도 대신 지도자의 말과 감정에 국가를 맡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미 경고했다. 민주정은 언제든지 선동가의 손에 의해 폭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군중은 이성보다 감정에 빠르게 반응하고, 긴 호흡의 개혁보다 즉각적인 보상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바로 그 인간적 약점을 파고든다.
그 순간 국가는 미래를 저당 잡힌다. 정책은 계산이 아니라 환호로 결정되고, 제도는 신뢰가 아니라 충성으로 유지된다. 국가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감정의 무대가 된다. 역사는 반복해서 증언한다. 국민을 가장 많이 부르짖은 권력이, 결국 국민을 가장 깊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누는 데에는 관대하지만 감당하는 데에는 비겁하다. 당장의 기쁨은 주지만, 그 대가를 침묵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떠넘긴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국가가 철학 없이 국정을 운영할 때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가격 통제는 시장을 붕괴시켰고, 무상 복지는 생산 의욕을 꺾었으며, 권력의 장기화는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석유는 있었지만 빵은 사라졌고, 선거는 있었지만 자유는 증발했다.
거리에서 사라진 것은 빵만이 아니었다. 신뢰가 사라졌고, 약속이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내일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사라졌다. 국가는 물리적으로 존재했지만, 국민의 정신 속에서는 이미 해체되어 있었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는 책임의 기술이며, 제도의 예술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쉽지만, 국민을 지속 가능하게 보호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고통스럽고 시간이 걸린다. 포퓰리즘은 그 고통을 건너뛰자고 유혹한다. 그러나 역사는 단호하다. 건너뛴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국가는 한 세대의 환호로 유지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신뢰와 절제, 그리고 불편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 위에 서야 한다. 복지는 필요하지만 생산을 해쳐서는 안 되고, 평등은 중요하지만 자유를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 균형을 잃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모든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달콤한 거짓을 파는 선동가를 따를 것인가. 포퓰리즘은 늘 “국민의 이름”으로 시작하지만, 끝에서는 언제나 국민의 삶을 담보로 무너진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이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비극을 피하는 길은 단 하나, 기억하고 성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 이용우 전)부여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