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붉은 깃발을 내려야 할 시간, 지방정부의 선택

[기고-칼럼] 붉은 깃발을 내려야 할 시간, 지방정부의 선택

이용우 전)부여군수
이용우 전) 부여군수

1865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른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다. 자동차 앞에 사람이 걸어가며 붉은 깃발을 들게 하고, 속도를 시속 3킬로미터로 제한한 이 법은 겉으로는 안전을 말했지만, 실상은 마차 산업이라는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기술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변화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시간은 잠시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역사는 단 한 번도 그런 선택에 관대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오늘의 지방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지방정부는 본래 주민의 삶을 앞서서 열어주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지방행정은 익숙한 제도와 관행, 굳어진 예산 구조에 기대어 ‘안전한 마차’를 붙잡고 있다. 새로운 시도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미뤄지고, 변화는 “위험하다”는 말로 봉인된다. 그 사이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나며, 지역은 점점 느린 속도로 굳어간다.

지방소멸의 원인은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다. 변화에 대한 행정의 속도 부족이다. 지금의 시대 상황 속에서 지방정부는 디지털 행정, 에너지 전환, 농업의 스마트화, 돌봄과 복지의 재설계, 문화와 관광의 재해석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더 이상 규제자에 머물 수 없다. 붉은 깃발을 들고 앞을 막는 존재가 아니라, 운전석에 앉아 방향을 잡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상상하고 선택하는 집단적 지성이기 때문이다. 행정이 과거의 틀을 지키는 데만 몰두할 때 주민의 삶은 현재에 갇히지만, 변화를 기회로 해석할 때 지역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특히 농촌은 결코 뒤처진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이 가장 본질적으로 남아 있는 장소다. 땅과 계절, 공동체와 돌봄, 기억과 역사, 이 모든 것이 농촌에 있다. 문제는 그것을 과거의 유산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자산으로 재해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변화는 농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변화를 거부할 때 농촌은 사라진다. 느리되 멈추지 않는 것, 전통을 지키되 현재에 머물지 않는 것, 그 균형을 잡는 일이 지금 지방정부에 요구되는 선택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붉은 깃발을 들고 서 있을 것인가. 이제는 내려야 한다. 그리고 지방이라는 이름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변화는 위기가 아니다. 지방정부에게 변화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다.

/ 이용우 전) 부여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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