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팟 기획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 인간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때, 인간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AI가 못하는 일’을 찾는 시대에서 ‘AI가 할 수 있어도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시대로

AI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 혹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이미지=AI생성)
AI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 혹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이미지=AI생성)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이미 많은 업무 영역에서 범용인공지능(AGI)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가 정작 주목하는 건 AGI라는 이름표가 아니다. AI가 실제로 쓸모 있는 일을 하고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느냐를 두고 논쟁하던 시기는 지났고, 이제 AI가 실제로 일을 시작한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변화는 화면 밖으로도 번지고 있다. AI가 현미경과 로봇팔, 실험 장비를 직접 조작하는 사례가 하나둘 등장하는 중이다. 정보를 찾고 답하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 세계에 개입하기 시작한 셈이다.

지금까지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줘”라고 물었다면, 앞으로는 “이 실험을 해보고, 결과가 안 좋으면 조건을 바꿔서 다시 해봐”라고 지시하는 쪽에 가까워질 것이다. AI가 논문을 읽고 실험을 설계하고, 로봇팔로 직접 실험한 뒤 결과를 분석해 다음 조건을 수정한다. 두뇌에 이어 손발까지 갖춰가는 중이다.

‘대체되지 않을 직업’이라는 낡은 질문

이런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AI가 대체하지 못할 직업이 뭐냐고. 그러면 늘 비슷한 답이 돌아온다. 창의성이 필요한 일, 사람을 돌보는 일, 고도의 판단이 필요한 일은 오래 살아남을 거라는 전망이다.

이 질문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AI가 못하는 일을 인간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AI 능력이 계속 좋아질수록 인간에게 남는 영역도 계속 줄어든다는 점이다. 창작도, 의료도, 교육도, 법률도 예외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AI가 뭘 못 하는지 찾을 게 아니라, AI가 할 수 있어도 무엇을 인간 몫으로 남겨둘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언급한 ‘휴먼 리저브드(Human Reserved)’, 즉 인간에게 남겨둔 영역이라는 개념이 이 지점에서 눈길을 끈다.

자연보호구역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산을 깎을 기술이 없어서 국립공원을 보존하는 게 아니다. 도로도, 호텔도 지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사회가 정한 것이다. 개발하지 않는 편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노동도 비슷한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효율적인 간병인과 좋은 간병인은 같은가

돌봄은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혈압을 재고 낙상을 감지하며 밤새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AI와 로봇이 인간보다 잘 해낼 가능성이 있다. 지치지도 짜증 내지도 않으니까.

어떤 노인이 같은 이야기를 하루에 열 번 반복해도 AI는 열한 번째에 짜증 내지 않을 것이다. 이전 대화를 전부 기억하고 가장 적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반응할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이상적인 간병인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효율과 가치가 갈라진다. 외로운 사람 곁에 누군가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기계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설계된 것은 같은 일인가. 언젠가 기술이 발전해 그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봐야 할까. 이건 기술만으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일해야 가치 있는 존재가 됐나

AI 시대에 맞닥뜨릴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직업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일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사회는 인간의 가치와 노동을 강하게 묶어왔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직업을 알면 소득과 생활 방식, 사회적 위치까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AI가 인간의 일을 빼앗는다는 두려움은 단순한 실업 공포만은 아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AI가 던지는 가장 어려운 질문은 어쩌면 기술이 아니라 존재에 관한 것일지 모른다.

문명은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며 발전하기도 했다

인류 문명을 기술의 역사로만 보면 인간은 계속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더 빨리 이동하고 더 높은 건물을 세우고 더 멀리 통신했다. 하지만 문명에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로 한 것’의 역사도 있다.

문화재가 대표적이다. 수백 년 된 궁궐 터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면 경제적 효율은 오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공간과 건축물을 보존한다. 옛 건물이 기능적으로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걸 남겨두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인간 노동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효율만 따지면 기계에 맡기는 편이 나은데도, 인간이 직접 하는 모습을 남겨두고 싶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 환자의 손을 잡는 간호사,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간병인,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가가 그렇다.

더 어려운 영역도 있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 국민을 대표해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이다. 언젠가 AI가 인간보다 더 많은 판례를 분석하고 더 일관된 판결을 내놓을 수도 있다. 방대한 정책 자료와 여론을 분석해 인간 정치인보다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때 사회가 마주할 질문은 “기계가 더 잘하는가”가 아니라 “그래도 인간이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진짜 경쟁은 경계를 설계하는 일

세계는 더 강력한 AI를 만들기 위해 경쟁 중이다. 미국과 중국이 겨루고, 반도체 기업들이 겨루고, OpenAI와 구글, 앤트로픽 같은 AI 기업들도 더 나은 모델을 만들려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다.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문제를 푸는 AI를 먼저 손에 쥔 국가와 기업이 큰 경제적 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쟁을 피하긴 어렵다.

하지만 기술 경쟁 못지않게 중요해질 경쟁이 있다. AI를 가장 많이 쓰는 사회를 만드는 경쟁이 아니라, AI와 인간의 경계를 가장 현명하게 설계하는 사회를 만드는 경쟁이다. 사회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낸다면 AI에 과감히 맡겨야 한다. 동시에 인간이 계속 맡아야 할 영역은 의도적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그 경계는 사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회는 교육을 중요하게 볼 수 있고, 다른 사회는 의료와 돌봄에서 인간의 역할을 더 무겁게 여길 수 있다. 예술과 종교, 사법과 정치에서는 훨씬 복잡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AI 시대의 핵심 정책은 반도체 지원이나 산업 육성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인간의 영역을 어디까지 남길지 정하는 사회적 논의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

가장 첨단의 기술이 가장 오래된 질문을 꺼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첨단의 기술이 인간을 가장 오래된 질문 앞으로 데려가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일하는가, 효율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이다. 기계가 인간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어도 인간은 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지, 기계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려도 우리는 왜 어떤 결정을 인간에게 맡겨야 하는지도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AI는 이런 질문에도 꽤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답을 선택할지는 결국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지난 200년, 산업사회는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기계에 넘기며 발전해왔다. 앞으로 20년은 전혀 다른 선택을 요구할 수 있다. 기계에 무엇을 맡길지만 고민해서는 부족하다. 기계가 할 수 있어도 무엇만큼은 인간에게 남겨둘 것인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AI 시대의 수준을 가르는 것은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진 사회가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김영진 기자
김영진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20년간 국가기관의 문화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수행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국가보훈부와 국립박물관단지 관련 업무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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