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팟 기획100년 전 공주의 밤을 다시 걷다…‘1926 공주 낭만연회’

[기획]100년 전 공주의 밤을 다시 걷다…‘1926 공주 낭만연회’

10회 맞은 공주 국가유산 야행, ‘1926 공주시가도’ 100주년을 축제의 시간축으로
미디어파사드·골목해설·무성영화·인력거까지…근대유산을 ‘보는 문화재’에서 ‘경험하는 도시’로
청년 참여와 야시장 동선 분리 돋보여…지역민과 방문객의 온도 차는 향후 풀어야 할 과제

2026 공주야행 안내책자(사진=김영진)
2026 공주야행 안내책자(사진=김영진)

밤이 내리자 공주의 왕도심은 100년 전 시간을 불러냈다. 공주제일교회 건물에는 빛과 영상이 흐르고, 제민천을 따라 조명이 이어졌다. 골목에서는 근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오갔고 인력거가 방문객을 태우고 천천히 거리를 지났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공주 국가유산 야행’의 풍경이다. 올해 야행은 1926년 제작된 ‘1926 공주시가도’ 100주년을 기념해 ‘1926 공주 낭만연회’를 부제로 내걸었다.

축제는 100년 전 충청의 정치·행정·문화 중심지였던 공주의 왕도심을 하나의 거대한 야간 역사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야경(夜景)·야로(夜路)·야사(夜史)·야화(夜畵)·야설(夜說)·야식(夜食)·야시(夜市)·야숙(夜宿) 등 ‘8야(夜)’를 중심으로 사흘 동안 46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번 야행에서 눈에 띈 것은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대 건축과 골목, 영화, 의상, 먹거리와 사람을 엮어 방문객이 직접 1926년의 공주를 걷고 경험하도록 했다.

교회 밖에는 빛, 안에는 100년의 역사

‘야경’의 대표적인 장면은 공주제일교회 건물을 활용한 미디어파사드였다. 밤이 되자 근대 건축물의 외벽은 영상을 담는 대형 화면으로 변했다.

공주제일교회를 배경으로 한 미디어파사드(사진=김영진)
공주제일교회를 배경으로 한 미디어파사드(사진=김영진)

현재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활용되는 교회 내부도 함께 개방했다. 밖에서는 빛으로 표현된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공주에 남은 100년 기독교 문화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제민천을 따라 밝혀진 조명을 따라 산책하는 관람객들(사진=김영진)
제민천을 따라 밝혀진 조명을 따라 산책하는 관람객들(사진=김영진)

제민천의 밤 풍경도 야행의 중요한 무대였다. 천변을 따라 조명을 밝히면서 문화유산과 문화유산 사이를 이동하는 길 자체를 하나의 야간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는 공주 국가유산 야행이 가진 공간적 장점을 보여준다. 특정 문화재 한 곳에서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행사가 아니라 왕도심을 걸으며 골목과 건축물, 하천과 시장을 연속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이 ‘역사 교과서’로

‘야로’에서는 해설사와 함께 왕도심 골목을 걷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소소한 마을 해설사(사진=김영진 기자)
소소한 마을 해설사(사진=김영진 기자)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건물과 골목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해설이 더해지자 낡은 건물과 오래된 길은 근대 공주의 시간을 보여주는 역사 공간으로 의미를 달리했다.

많은 방문객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문화유산을 개별 건축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도시는 박물관과 다르다. 유산과 사람의 생활공간이 겹쳐 있다. 이번 야행은 바로 그 특성을 활용했다. 왕도심의 골목 자체를 전시장으로 삼은 셈이다.

변사의 목소리, 1930년대 영화…밤에 만난 근대문화

당간지주 특설무대에서 진행된 ‘야설’은 근대의 대중문화와 지역 무형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이었다.

공주선학리지게놀이 공연(사진=김영진 기자)
공주선학리지게놀이 공연(사진=김영진 기자)

공주선학리지게놀이 등 무형유산 공연이 펼쳐졌고, 최영준 변사가 진행한 추억의 무성영화 변사극도 무대에 올랐다. 오늘날 영화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변사의 해설과 연기를 통해 과거 영화 관람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 필름인 ‘미몽’(사진=김영진 기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 필름인 ‘미몽’(사진=김영진 기자)

‘마을ON’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 필름인 ‘미몽’이 상영됐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작품 속에서 우리말 대사와 일본어 자막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게 했다.

'시간의 문, 1926' 주 체험장(사진=김영진 기자)
‘시간의 문, 1926’ 주 체험장(사진=김영진 기자)

‘근대 의상 체험’과 ‘시간의 문, 1926’, ‘공주 사진엽서전’도 왕도심 곳곳에서 이어졌다.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1926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공유하면서 축제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근대 거리의 인력거 체험(사진=김영진 기자)
근대 거리의 인력거 체험(사진=김영진 기자)

특히 ‘근대 거리의 인력거 체험’은 노약자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체험 자체가 근대라는 축제 주제와 맞닿아 있으면서 도보 이동이 많은 야행의 불편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문화는 야행에서, 먹거리는 시장에서

이번 행사에서 돋보인 또 하나의 부분은 ‘공간 배치’였다.

공주산성시장 밤마실 야시장(사진=김영진 기자)
공주산성시장 밤마실 야시장(사진=김영진 기자)

같은 기간 인근에서는 ‘공주산성시장 밤마실 야시장’이 열렸다. 야행 행사장 안에 먹거리 공간을 집중시키는 대신 ‘147 배꼽마당’과 산성시장으로 먹거리 수요를 자연스럽게 분산했다.

덕분에 문화유산 공간에서는 공연과 체험에 집중하고, 식사는 인근 시장과 별도 먹거리 공간에서 해결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행사장 혼잡을 줄이면서 방문객을 전통시장으로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였다.

먹거리 공간 ‘147 배꼽마당’(사진=김영진 기자)
먹거리 공간 ‘147 배꼽마당’(사진=김영진 기자)

문화유산 축제와 지역 상권을 연결한다고 해서 모든 기능을 한 공간에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공간의 성격을 구분하면서 방문객의 이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왕도심 전체에 체류 시간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청년들이 들어오자 축제의 표정도 달라졌다

현장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역 청년들의 참여였다.

체험공간에서 진행하는 공주출신 청년들(사진=공주시)
체험공간에서 진행하는 공주출신 청년들(사진=공주시)

지역 문화행사가 동호회나 체험학습단체 중심으로 운영될 경우 안정적인 진행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이 익숙한 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이번 야행에서는 청년들이 축제의 여러 영역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체험공간에서 미용활동하는 공주 청년들(사진=김영진 기자)
체험공간에서 미용활동하는 공주 청년들(사진=김영진 기자)

다소 서툰 모습도 있었지만 젊은 세대 특유의 신선함과 에너지가 행사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역의 젊은 세대가 축제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앞으로 공주 야행이 지속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방문객들의 사진 촬영이 많을 것을 고려한 ‘초상권 사용 안내’와 곳곳에 마련된 휴식공간도 작은 부분이지만 눈에 띄었다. 가족 단위 방문객과 노약자까지 고려하면 이런 세부적인 운영이 축제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한다.

“공주에 이런 게 있었나”…청소년도 붙잡은 근대문화

방문객들의 반응에서 흥미로운 지점도 발견됐다.

다른 지역 행사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근대문화 콘텐츠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외지 방문객이 적지 않았다. 백제의 고도라는 공주의 익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근대도시 공주’를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구 공주입사무소(사진=김영진 기자)
구 공주입사무소(사진=김영진 기자)

취재에 동행한 고등학생 자녀의 반응도 이를 보여줬다. 이전까지 공주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청소년이 이번 야행에는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역사문화도시가 다음 세대와 만나려면 유산의 가치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청소년과 젊은 층이 자신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경험으로 바꿔줘야 한다.

공주사진엽서전(사진=김영진 기자)
공주사진엽서전(사진=김영진 기자)

이번 야행은 근대 의상과 인력거, 영화, 미디어파사드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문화유산과 방문객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지역의 야간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 체류형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야행의 취지와도 맞닿는다.

방문객에게는 ‘신선함’, 지역민에게는 ‘아쉬움’

다만 모든 평가가 같았던 것은 아니다.

외부 방문객들이 근대문화 콘텐츠의 신선함을 높게 평가한 반면, 기존 백제문화와 제민천을 중심으로 한 공연과 행사에 익숙한 일부 지역민에게서는 다소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온도 차는 오히려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공주는 백제의 왕도인 동시에 근대 충청의 정치·행정·문화 중심지였다. 어느 한 시대를 선택해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백제에서 조선, 근대로 이어지는 도시의 시간층을 어떻게 각각의 콘텐츠로 만들고 서로 연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복원된 충청감영 포정사를 배경으로 한 체험공간 배치(사진=김영진 기자)
복원된 충청감영 포정사를 배경으로 한 체험공간 배치(사진=김영진 기자)

올해 ‘1926 공주 낭만연회’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던 ‘근대 공주’를 축제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하나의 실험으로 평가할 만하다.

자동차 한 대가 깨뜨리는 ‘100년 전의 밤’

아쉬운 점도 분명했다.

주최 측이 주차 통제에 나섰지만 이를 따르지 않은 일부 차량과 도로 위 주차가 야행의 분위기를 흐렸다. 100년 전의 거리와 풍경을 재현한 공간에서 현대의 자동차가 뒤섞이면 방문객의 몰입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주차 문제를 넘어 문화유산 축제에서 ‘공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행정의 통제만으로 해결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행사 기간만큼은 왕도심 일부 공간을 보행자와 문화유산에 내어준다는 지역사회의 공감과 자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김영진 기자
김영진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20년간 국가기관의 문화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수행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국가보훈부와 국립박물관단지 관련 업무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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