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 천도 직후(540~543년) 인사·재정·행정 기록 쏟아져… 백제사 연구 ‘획기적 자료’
1,500여 년 전 백제 사비도성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백제인의 숨결이 닿은 관악기와 당시의 생생한 행정 시스템을 보여주는 목간(木簡)이 대량으로 발굴됐다. 특히 삼국시대(7세기)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최초여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소장 황인호)는 5일 오전, 부여 관북리 유적 제16차 발굴조사(2024~2025년) 성과를 공개하며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왕궁 화장실서 발견된 ‘백제의 소리’… 최초의 실물 피리(횡적)
이번 발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7세기 백제 조당(朝堂·왕과 신하가 정무를 보던 건물)지 인근 구덩이에서 출토된 대나무 관악기, 횡적(橫笛)이다.
길이 22.4cm의 이 유물은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발견되었으나, 엑스레이 분석 결과 입김을 불어넣는 취구와 4개의 지공(손가락 구멍)이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부여 능산리 금동대향로에 묘사된 세로 피리와 달리,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형태”라며 “중국·일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의 국악기 소금(小笒)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횡적이 발견된 구덩이 흙에서 기생충 알이 다수 검출됨에 따라, 이곳이 당시 조당에 딸린 화장실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견은 문헌이나 도상이 아닌 ‘실물’로서 백제 악기의 실체를 확인한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향후 백제 음악과 소리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전망이다.
“김 대리를 과장으로”… 사비 천도 직후의 생생한 행정 기록
함께 출토된 329점의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 최대 출토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이 목간들은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한 538년 직후인 ‘경신년(540년)’과 ‘계해년(543년)’의 간지가 적혀 있어, 천도 초기 이미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했다.
목간의 내용은 인사 이동, 재정 장부, 행정 구역 개편 등 백제 중앙 관청의 업무 일지를 방불케 한다.
▷ 인사 기록: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는다(功四爲小將軍刀足二)”는 내용이 적힌 편철(끈으로 엮은 책 형태) 목간이 발견됐다. 이는 당시 백제의 인사 평가와 임명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 행정 체계: 도성 내 행정 구역인 5부(상·전·중·하·후부)와 지방 행정 단위인 방-군-성 체계를 보여주는 목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하서군’, ‘요비성’ 등 새로운 지명이 확인되어 백제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 생활상: ‘입동(24절기)’, ‘인심초(약초 추정)’ 등이 적힌 목간과 일본식 한자로 여겨지던 ‘전(畑, 밭)’자가 확인되어 당시의 활발한 대외 교류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 위해 깎아낸 부스러기인 ‘삭설’이 다수 발견된 점은 해당 공간이 문서를 생산하고 폐기하던 22부사(중앙 관청)와 관련된 핵심 행정 공간이었음을 시사한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1,500년 전 백제의 문서 행정 실태와 음악 문화를 실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백제 사비기의 역사를 명확히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