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변검·사자놀이로 세대 잇는 전통예술 무대…국립부여박물관 사비마루서 성황
팽팽하게 당겨진 외줄 위에 줄광대가 올랐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웃음이 번갈아 터졌다. 익살스러운 재담이 이어지자 긴장으로 굳었던 관객들의 표정도 이내 풀렸다.
잠시 뒤 무대에서는 얼굴 가면이 눈 깜짝할 사이 바뀌는 변검이 펼쳐졌다. 붉은색과 검은색, 흰색의 가면이 순식간에 교차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사자놀이에서는 힘찬 몸짓과 장단이 어우러지며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전통의 의미가 되살아났다.
지난 18일 국립부여박물관 사비마루 공연장에서 열린 ‘부여 효문화 대향연’은 효를 엄숙한 교훈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줄타기와 변검, 사자놀이 등 흥과 해학이 살아 있는 전통예술을 통해 세대가 함께 즐기고 공감하는 무대로 풀어냈다.
‘효, 세대를 잇는 사랑의 울림’을 주제로 열린 이날 공연은 부여효문화추진단이 주최·주관하고 충남도와 부여군이 후원했다. 사비향예술단과 마당극패 우금치, 사비색소폰, 가수 김세호, 줄타기 박회승, 변검 구본진, 전통연희단 동락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과 공연단체가 무대에 올랐다.
외줄 위에서 풀어낸 삶의 희로애락
이날 공연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무대 가운데 하나는 박회승의 줄놀이였다.
줄광대는 하늘과 땅 사이에 걸린 외줄 위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동작과 재담을 선보였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예뿐 아니라 관객과 대화를 주고받는 해학적 진행이 더해지면서 공연장은 웃음으로 달아올랐다.
줄타기는 단순한 곡예가 아니었다. 줄 위에서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잡는 모습은 인생의 굴곡과 닮아 있었다. 줄광대는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긴장을 만들었고, 능청스러운 말과 몸짓으로 그 긴장을 풀어냈다.
객석의 어르신들은 줄광대의 재담에 웃음을 터뜨렸고, 젊은 관객들은 고난도의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탄성을 보냈다. 세대별로 반응하는 지점은 달랐지만 공연이 전하는 흥과 해학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이날 줄타기 무대는 전통예술이 박물관이나 기록 속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라 관객과 끊임없이 호흡하는 살아 있는 문화임을 보여줬다.

한순간에 바뀐 가면…변화와 희망의 메시지
변검 구본진의 ‘천변만화, 변화와 희망을 품다’도 공연의 분위기를 크게 바꿨다.
검은 의상을 입은 연희자가 몸을 돌리고 부채를 펼칠 때마다 얼굴의 가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관객이 변화를 알아차릴 틈도 없이 새로운 표정이 나타나자 객석에서는 연달아 환호가 터졌다.
변검은 빠른 기술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지 않았다. 가면이 바뀔 때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삶의 변화가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났다. 한 얼굴 뒤에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고, 어둠 뒤에 새로운 표정이 등장하는 장면은 변화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공연 프로그램이 ‘변화와 희망’을 주제로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 기예의 신비로움에 현대적인 무대 연출을 더해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했다.
특히 효문화 행사에서 변검을 배치한 것은 효를 과거의 고정된 규범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시대와 세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치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혔다.

힘찬 사자의 몸짓…액운 쫓고 만복 기원
사자놀이는 공연장의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김솔잎·곽병철·이준희·안태근·배효철이 참여한 ‘효의 길상, 만복을 기원하다’는 사자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흥겨운 장단을 결합한 무대였다.
사자는 몸을 낮췄다가 크게 뛰어오르고, 관객을 향해 익살스러운 몸짓을 보였다. 위엄과 장난기가 교차하는 움직임에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다.
예로부터 사자놀이는 액운을 몰아내고 마을과 공동체의 평안, 풍요를 기원하는 전통연희로 이어져 왔다. 이날 무대에서도 사자의 힘찬 움직임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공동체의 염원을 담았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사자의 움직임도 거세졌고, 연희자들의 호흡은 한층 정교해졌다. 관객들은 사자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무대에 몰입했다.
효의 가치를 가족 안의 공경에만 한정하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의 평안, 서로를 돌보는 마음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행사 취지와도 맞닿아 있었다.


전통연희단 동락, 판굿과 용기놀이로 대미
전통연희단 동락은 ‘희망의 울림-판굿, 용기놀이’를 통해 공연 후반부를 장식했다.
용의 형상을 활용한 기놀이와 타악 연주, 역동적인 몸짓이 어우러지며 공연장은 거대한 신명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연희자들은 빠른 장단에 맞춰 무대를 누볐고, 관객들도 박수로 장단을 맞췄다.
줄타기와 사자놀이, 판굿은 모두 관객과의 호흡을 빼놓을 수 없는 전통예술이다. 이날 공연 역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흥을 나누는 대동의 분위기로 이어졌다.
마지막 ‘대동 한마당’에서는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졌다. 관객은 더 이상 공연을 바라보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장단과 박수로 무대를 완성하는 참여자가 됐다.


소리·마당극·색소폰까지…장르 넘나든 무대
이날 공연은 전통연희 외에도 소리와 마당극, 대중가요, 색소폰 연주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사비향예술단의 ‘백제 효의 서막’은 백제의 품격과 효의 정신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며 공연의 문을 열었다. 고수 권은경과 소리꾼 김수향은 ‘효의 씨앗, 나눔의 꽃’을 통해 부모 공경과 형제간 우애, 이웃과의 나눔을 소리로 풀어냈다.
마당극패 우금치는 심청전을 바탕으로 한 ‘청아, 청아 내 딸 청아’를 선보였다. 익숙한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부모에 대한 공경과 가족애의 의미를 되새겼다.
사비색소폰은 ‘백마강, 효의 노래’를 연주했고, 가수 김세호는 ‘사랑 찾는 머슴아’와 ‘장터’를 불러 공연에 대중적인 흥을 더했다.




“효는 세대와 공동체를 잇는 실천”
1부 개회식에서는 대한노인회 부여군지회 이규성 부지회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권석환 부여효문화추진단장은 환영사에서 “효가 가정을 넘어 사회와 세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며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용우 부여군수는 오늘의 부여가 어르신들의 헌신 위에 세워졌다고 감사를 전하며, 효문화 행사가 어린이와 청소년까지 함께하는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발전하길 기대했다.
민병희 충남도의원은 부모에 대한 공경뿐 아니라 이웃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오늘날 효의 의미라며, 음악과 사랑으로 세대를 잇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교훈보다 흥으로 전한 효의 가치
이번 공연은 효를 무겁고 낡은 규범으로 전달하기보다 줄타기의 해학, 변검의 놀라움, 사자놀이의 신명 속에 담아냈다.
외줄 위에서 중심을 잡는 줄광대의 몸짓은 삶의 어려움을 견디는 지혜를 보여줬고, 순식간에 바뀌는 변검의 가면은 변화와 희망을 상징했다. 사자놀이는 공동체의 안녕과 만복을 기원하며 효의 범위를 가족에서 이웃과 사회로 넓혔다.
무대 위에서는 젊은 연희자들이 뛰었고, 객석에서는 어르신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중년 세대는 공연을 기획하고 이끌었다. 세대는 달랐지만 흥과 장단이 이어지자 경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효의 마음이 세대를 잇고, 문화의 울림이 미래를 잇는다’는 공연의 메시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