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대한(大寒) 추위 녹일 뜨끈한 국물 생각에 건넨 제안… “거기 좋지” 흔쾌한 동의 단골 형님 취향 꿰뚫은 형수님의 ‘묵은지’ 서비스… 바삭한 튀김과 진한 추어탕의 완벽한 조화
오전 9시, 대한(大寒) 추위 뚫고 건넨 점심 제안… 단골 형님 취향 저격한 형수님의 ‘묵은지’ 걸쭉한 국물에 들깨의 고소함과 산초의 알싸함 더해… 뼛속까지 데우는 보양의 연금술
1년 중 가장 춥다는 절기 ‘대한(大寒)’을 갓 넘긴 21일 오전 9시. 창문을 열면 칼바람과 추위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문득 뜨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해져 휴대전화를 들었다. 지역을 아끼는 형님과 통화했다.
“형님, 날도 추운데 오늘 점심 같이 하시죠. 천상미꾸리 어떠세요?” “어, 거기 좋지. 국물 진하잖아.” “사람 몰리기 전에 11시 30분에 거기서 뵙죠.”
그렇게 급조된 ‘번개 오찬’을 위해 오전 11시 30분, 부여읍에 위치한 ‘천상미꾸리’ 문을 열었다. 약속 시간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본격적인 점심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식당은 적당한 온기와 여유가 감돌았다. 우리가 들어서자 주방에 있던 여사장님이 나와 형님을 반겼다.
“아이고, 동생 왔어? 어서 따뜻한 안쪽으로 앉아.” 알고 보니 사장님은 형님과 호형호제하는 지인의 아내이자 누님, 즉 형님에게는 각별한 ‘형수님’ 이자 ‘누님’ 이었다. 단순히 식당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넘어선 가족 같은 환대에 식당 안 공기가 한층 더 훈훈해졌다.
자리에 앉아 미꾸리 튀김과 추어탕을 주문하자, 잠시 후 사장님이 반찬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형님 앞에는 식당의 기본 찬인 겉절이 대신, 푹 익은 ‘묵은지’가 놓였다. “동생은 곰삭은 거 좋아하시잖아. 안쪽에 따로 묵혀둔 건데 맛 좀 봐.” 오전 9시의 급작스러운 제안에도, 식당은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형님의 취향을 완벽하게 맞춰냈다.


먼저 나온 황금빛 미꾸리 튀김을 사장님이 챙겨준 묵은지와 함께 한 입 먹으며 입맛을 돋웠다. 뒤이어 오늘의 주인공, 뚝배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추어탕과 밥공기가 나왔다. 진득한 국물에 시래기가 듬뿍 담긴 탕, 이제부터는 ‘나만의 맛’을 완성할 차례다.
형님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테이블 위의 양념 통을 집어 들었다. “이걸 듬뿍 넣어야 제맛이지.” 형님을 따라 거피(去皮)한 들깨 가루를 크게 두 숟가락 넣었다. 국물이 한층 더 걸쭉해지며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추어탕의 영혼과도 같은 ‘산초 가루’를 톡톡 털어 넣고, 밥공기도 추어탕에 넣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국물을 한 입 떴다. 혀끝에 닿는 순간, 들깨의 묵직한 구수함이 먼저 들어오고, 뒤이어 산초 특유의 알싸하고 화한 향이 입안 전체로 퍼지며 미각을 깨웠다. 자칫 비릿할 수 있는 미꾸라지의 잡내를 산초가 완벽하게 잡아주고, 들깨가 풍미의 빈틈을 메워주는 ‘맛의 연금술’이었다.
“으어, 좋다.” 형님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낮은 탄성을 내뱉으며 뚝배기에 코를 박았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정성 담긴 묵은지를 얹어 먹으니, 오전 내내 언 몸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오전 9시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11시 30분의 점심 식사. 이날 ‘천상미꾸리’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끼니 해결이 아니었다. 형님과 형수님 사이에 오가는 끈끈한 정(情), 그리고 산초와 들깨 향이 어우러진 뜨끈한 국물까지. 부여의 겨울을 이겨낼 힘을 얻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