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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억 빚’ 농업 실패 딛고 자수성가한 김민수 부여군수 후보, 청년 농업인의 희망을 그리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수 부여군수 후보가 지난 27일 지역 청년 농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파란만장한 농업 인생사와 청년 맞춤형 농정 공약을 밝혔다. 우수한 성적에도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농업고등학교를 진학했던 소년은, 5억 원의 빚을 지는 뼈아픈 실패를 거쳐 이제는 청년 농업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나섰다.

농업 향한 뚝심, 매를 맞으며 진학한 농고와 끊임없는 학구열

김 후보의 농업을 향한 열정은 중학교 시절부터 남달랐다. 당시 반에서 2~3등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공주 사대부고나 대전 지역 명문고 진학이 충분히 가능했지만, 그는 선생님의 인문계 진학 권유를 거절하고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고집했다. 농고에 가겠다는 아들을 반대하며 아버지가 호되게 매를 들었음에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와 선생님을 설득해 농고에 입학했다.

졸업 후 곧바로 농사를 지으려 했으나, “선택의 폭을 넓히라”는 친형의 엄한 조언에 따라 예산의 전문대학에 진학해 축산을 전공했다. 이후 4-H 활동(분회장, 도회장, 중앙연합회 부회장)에 매진하던 그는, 방송통신대를 거쳐 대학원까지 진학한 지인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방송대에 입학했으며, 이후 공주대학교대학원 석사(동물자원학)와 박사과정수료(원예학) 까지 이수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소 값 폭락으로 안은 5억 원의 빚, 새벽 4시부터 이어진 피나는 노동

학업과 단체 활동을 병행하며 본격적인 영농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지원금을 받아 축산에 손을 댔지만 소 값 폭락 등의 악재가 겹치며 약 5억 원이라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한때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만큼 극심한 생활고와 깊은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김 후보는 주저앉지 않았다. 1995년부터 3년간 매일같이 부여지역 농산물을 수거해 트럭을 몰고 서울 가락시장으로 운반하는 험난한 노동을 온몸으로 버텨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남해화학 부여 대리점을 운영하게 되면서부터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직접 비료를 나르는 등 혹독하게 일했다. 노동 강도가 어찌나 셌던지, 집에 돌아가면 비료 포대를 나르던 굽은 손이 펴지지 않아 피가 맺힐 정도였다.

2009년 부채 청산과 자수성가, 청년 농업인을 위한 현실적 정책 구상

이러한 뼈를 깎는 노력과 비료 호황기에 힘입어 김 후보는 2009년 마침내 5억 원의 부채를 전액 청산했다. 이후 지속적인 사업적 성공을 거두며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자수성가형 인물’로 우뚝 섰다.

“나는 농업에 실패했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재기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김 후보는, 자신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 농업인들을 위한 현실적인 농정 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철저히 현장과 청년 농업인 중심의 소통 행정을 약속하며 다음과 같은 구체적 지원책을 제시했다.

첫째, 정착 성공률이 높은 승계농에게는 농업어촌발전기금을 활용한 저리 융자를 확대하고, 군 차원에서 보증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둘째, 기반이 부족한 신규 창업농에게는 초기 보조 비율을 높여 영농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셋째, 현재 공시지가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농가 자산 대출 평가를 실제 감정가 기준으로 개선하여 금융 지원을 현실화하고, 부득이한 부도 발생 시 타 농업인이 자산을 원활히 인수할 수 있는 행정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실패와 혹독했던 극복 과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으며 “모두가 농업에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전한 김민수 후보.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이겨낸 농고 진학부터 5억 원의 빚을 청산하기까지의 치열한 여정은, 이제 부여군 청년 농업인들의 현실을 바꾸는 살아있는 정책으로 피우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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